정보/마라톤

달리면 살이 빠진다?

김 필립 2008. 9. 22. 13:34

달리면 살이 빠진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달린다."

달림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왕성한 식욕, 그걸 주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기가 막힌 합리화 문구니까요.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지는 않습니까?


"과연 뛰면 살이 빠지는 걸까?"

"달리면 아무거나 막 먹어도 되는 걸까?"


얼마전 로버트 할리씨가 TV에 나온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매일 새벽에 10km씩 뛴다고 하더군요. 하루 10km면 적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의 몸매를 보니 날씬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벌써 눈치를 채셨겠네요. 뛴다고 다 살이 빠지는 건 아닙니다. 결국은 인풋과 아웃풋의 문제니까요.


물론 달리기가 좋다는 건 어지간히 먹어도 된다는 거죠. 달리기를 하게 되면 몸의 바깥쪽만이 아니라 내장도 업그레이드되니 웬만큼 과식해선 탈나는 법이 없습니다. 뿐인가요? 혈관이 업그레이드되니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들로부터도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고요.


하지만 먹는 것도 먹는 것 나름입니다. 동호회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훈련 모임이 끝나면 삼겹살이다 소주다 해서 엄청들 먹어대잖아요. 안그렇다고요?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이런 이유 때문에 동호회 활동을 안하고 독립군으로 뛰고 있거든요.


영국의 어느 의사는 건강을 위해 소식, 즉 적게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물론 이건 너무 당연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인체도 기계니까 쓰는만큼 낡는다, 따라서 소화기를 포함한 내장기관도 아끼고 외부 기관인 근육 등도 아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기본 수명인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은 둘째 치고 그렇게 하면서까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집니다. 먹는 기쁨, 운동하며 땀 흘리는 기쁨 다 버리고 오래 살면 과연 행복할까요?


사실 달림이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하나가 바로 '먹는 기쁨' 아니겠습니까. 특히 초보 때의 그 왕성한 식욕이란!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빨아들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지요.


피트니스 교재인 '바디 포 라이프(Body for Life)'를 보면 '자유의 날'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일주일에 6일은 적절히 먹되 나머지 하루는 자유의 날로 정해 마음껏 먹자라는 얘깁니다. 참 마음에 들더군요.


그런데 이 적절히 먹는다는 것도 심하게 뭔가를 제한하라는 게 아닙니다. 사실 패러다임만 조금 바꾸면 별거 아닌 얘깁니다. 설탕을 줄이는 하나만으로도 당장, 그리고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설탕을 엄청 먹습니다. 아무 음료수나 집어들고 성분표를 한번 보세요. 백설탕, 혹은 정백당이 안들어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달릴 때 흔히 마시는 포카리 스웨트나 파워에이드에도 잔뜩 들어 있습니다.


흔히 무가당 주스를 별거 아닌 거처럼 얘기합니다. 설탕을 첨가하지만 않았을뿐 과일에 원래 있는 당분은 그대로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과일의 당분과 백설탕의 당분은 천양지차거든요. 지난글 '운동과 음료수'에서 설탕의 피해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렸으니까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설탕이 안들어가면 맛이 안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패러다임을 바꾸시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혀끝에서 깔짝대는 얕은 맛을 빨리 버리시고 음식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 깊은 맛을 느끼시라는 겁니다.


웰빙족이 늘어나면서 유기농 음식을 파는 곳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흔히들 유기농 하면 맛이 없다고 생각하시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화학비료의 힘을 빌지 않고 농약도 안쓰다 보니(저농약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음식 고유의 맛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다만 건강을 위해 유기농을 찾는만큼 백미보다는 현미를, 흰 밀가루 빵보다는 통밀빵을 주로 팔고 설탕이나 버터 등을 덜 쓰는 탓에 맛이 좀 떨어진다고 인식될 뿐입니다.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면 이 역시 간단하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지요.


또 하나는 저울에 너무 민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보통은 체중이 줄면 살이 빠졌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체지방률이 줄어야 합니다. 체중이 줄긴 했지만 그게 근육의 손실을 의미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거든요. 반대로 체중이 늘더라도 주로 근육이 늘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기뻐할 일이고요.


비만이 점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탓인지 요즘은 체지방 재는 기구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헬스 센터에는 지방만이 아니라 근육의 양과 신체 각 부위의 발달 정도까지 알려주는 체성분 측정기가 있습니다.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간단하게 체지방률을 알려주는, 저울처럼 생긴 기구도 시중에서 많이 팔더군요. 숀 필립스가 쓴 웨이트 트레이닝 지침서 'ABS 프로그램'이란 책에서는 이런 거창한 기구들 말고 복부에 갖다대서 간단히 측정하는 캘리퍼(caliper)라는 기구가 있다고 하던데 국내에는 없는지 구하기가 어렵네요.


얘기가 약간 길어졌습니다만 결론은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먹자 아니겠습니까. 약간의 사고 전환만 할 수 있다면 다시 이렇게 외쳐도 되겠네요.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달린다."

출처 스포츠조선